전세 사기 확산, 임차인 주거 불안 ‘심화’
“사기 공포에 월세 수요 급증… 임대시장 구조적 변화 신호”
전세 제도가 더 이상 안전한 주거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세 사기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월세 수요가 급증했고, 그 결과 월세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5세 김 모 씨(가명)는 지난 2020년 2월 인천으로 이직하며 평생 모은 돈 5천만 원과 지인에게 빌린 3천만 원을 합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년 뒤 법원에서 해당 주택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채권 순위가 밀려 사실상 보증금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당시에는 전세 사기에 대한 경각심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세 사기’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죠.” 라며 김 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세 신뢰 붕괴… 월세 시장 ‘대세’로
김 씨 사례처럼 전세 제도의 안전망이 무너진 상황에서, 세입자들은 막대한 보증금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전 재산과 대출금을 합쳐 보증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가 발생하면 삶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위험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세입자들은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월세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전체 임대차 시장의 60%를 넘어섰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전국 월세 계약 건수는 106만 건에 달해 전년 대비 27% 급증했다. 반면 전세 비중은 2020년 59.3%에서 올해 38.1%로 떨어져 사상 처음으로 40% 밑으로 내려갔다.
월세 수요 확대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한국부동산원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7월 기준 월세 중위가격은 98만 원으로, 1월 대비 4.8%, 2015년 대비 30% 상승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 구조적 변화 불가피”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일시적 조정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보고 있다. 경기대학교 김진유 교수(도시·교통학과)는 “전세 사기 인식 확산과 주택 가격 상승, 보증금 마련의 어려움이 맞물리면서 월세 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전세가 줄면서 사기 위험은 감소하고, 막대한 자금이 보증금으로 묶이지 않으니 시장 효율성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며 긍정적인 측면도 지적했다. 특히 대기업이 월세 수익 기반으로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 증가는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과거 일부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활용해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매입했고, 이는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주택 공급 확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세 수요가 줄면서 이러한 공급 구조가 붕괴되고 있다.
NH농협은행 김효선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월세 상승이 계속된다면 소득이 불안정한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임대료 상승 속도가 소득 증가율을 초과하면서 생활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 대책에도 피해 여전
정부는 청년·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만 19~34세 무주택 청년 15만7천 명을 대상으로 최대 월 20만 원씩 2년간 임차료를 지원하는 572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또, 신혼부부와 청년층을 위해 시세보다 저렴한 전세형 임대주택 3천 가구를 공급하기 위해 3,208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이미 피해를 본 세입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앞서 언급된 김 씨는 결국 자신이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아 거주를 이어가고 있다. “법원과 은행을 오가며 문제를 해결하느라 시간을 다 빼앗겼습니다. 돈을 잃은 것도 괴롭지만, 문제를 처리하느라 일을 할 시간조차 줄어 결국 더 가난해진 느낌입니다.”
그는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전세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